'파파라치'는 본래 영화배우 같은 유명 인사의 사생활을 촬영해 잡지사 등에 판매하는 사진작가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1997년 8월 파파라치의 추격을 따돌리려다 일어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에게 파파라치라는 단어를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파파라치는 다른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법 현장을 관공서 등에 신고해 포상금을 받아 내는 사람들을 파파라치라고 부릅니다. 세금이나 학원, 투기 등 영역에 따라 '세파라치' '학파라치' '투파라치' 등으로 나눠지기도 합니다. 국내 파파라치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현택 기자
카파라치는 비판여론 밀려 2003년 폐지
국내에서 파파라치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기 시작하면서입니다. 파파라치에 카(Car·자동차)를 붙여 '카파라치'라고 불렀는데요. 2001년 3월 등장했던 카파라치는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 여론에 밀려 2003년 1월 폐지됐습니다. 2002년 국정감사에선 한 달에 평균 464만원씩 버는 30대 남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오늘날 관공서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파라치' 제도는 50여 종에 이릅니다. '학파라치(학원 불법 운영 신고 포상금제)'를 비롯해 '쓰파라치(쓰레기 투기 신고 포상금제)' '봉파라치(1회용 봉투 무상 지급 신고 포상금제)' '세파라치(탈세 신고 포상금제)' 등 이름도 다양합니다.
국세청·구청·법무법인서도 파파라치 활용
파파라치를 주로 이용하는 곳은 관공서입니다. 국세청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사업자를 신고하면 영수증 미발급 금액의 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세파라치'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요. 1인당 지급 한도는 건당 50만원 이하, 연간 200만원 이하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세파라치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입법 예고한 바 있습니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변리사·건축사·법무사·의사·한의사·수의사 등이 대상인데요. 이들 전문직 종사자가 30만원 이상 거래에 대해 현금영수증, 신용카드 영수증, 세금계산서 등 적법한 영수증을 발급해 주지 않으면 건당 300만원, 연간 1500만원 이내에서 거래액의 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토해양부도 이달 8일 보금자리주택지와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투기 행위를 신고할 경우 50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투파라치' 제도를 발표했습니다.
생활과 밀착된 파파라치의 경우 구청에서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청별로도 쓰레기 무단 투기(쓰파라치), 비닐봉지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상점·식당(봉파라치), 유해 식품 판매 및 잔반 재사용(식파라치) 등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요즘 콘텐트 저작권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변호사들이 일하는 법무법인에서도 파파라치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음악 파일, TV 방영 동영상, 드라마 캡처 화면 등을 허락 없이 유포할 경우 모두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이렇듯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송이나 합의금 요구를 하는 일부 법무법인에서는 영파라치(영화 파파라치)에게 건당 1만2000원가량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지드래곤 '하트브레이커'불법 음원신고 최고
최근에는 '음파라치'라는 용어도 생겨났습니다. mp3 파일 등 불법 음원을 유포하는 네티즌을 신고하는 파파라치입니다. 한 법무법인과 영화 포털 사이트가 공동으로 만든 신고 사이트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불법 음원 유출 신고 1건당 1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9월 3~9일 집계 결과 불법 음원 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된 곡은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발표한 솔로 곡 '하트브레이커'로 전체 신고 건수의 19.5%를 차지했습니다. 지드래곤 이외에는 여성그룹 포미닛, 신인 그룹 f(x), 백지영 등이 불법 음원 유출 신고 건수 상위에 올랐습니다. 대개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가 많이 유출되고, 신고 건수도 많습니다.
나무젓가락·종이컵·코팅명함 사용한 식당도 걸려
이처럼 파파라치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위 '전문 파파라치'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 전문 파파라치는 업체 한 곳을 방문하더라도 한 가지만 살펴보지 않습니다.
가령 횟집에 간다고 하면 체크포인트가 10개나 된다고 하네요. 일단 물고기의 원산지 표시가 잘 되고 있는지(포상금 5만~10만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는지(포상금은 영수증 발급 거부 금액의 20%), 잔반을 재사용하는지(포상금 5만~10만원) 등이 단속 대상입니다.
식당 업주들이 골머리를 썩는 부분은 바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입니다.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식당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 제한 품목은 나무젓가락·종이컵·플라스틱접시·플라스틱수저·비닐식탁보·나무이쑤시개·코팅 명함 등 일곱 가지입니다. 신고할 경우 2만~5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해당 업주에게는 5만~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이 중에서 코팅 명함은 업주들이 무심결에 실수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명함가게에 별생각 없이 “가게 명함을 찍어 달라”고 했다가 비닐 코팅된 명함을 만들어 비치했다 낭패를 보곤 합니다. 법에 따라 식당에서는 반드시 코팅되지 않은 종이 명함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카메라 사용법·현장실습 배우는 전문학원도
파파라치를 양성하는 학원이 전국에 수십 곳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원은 강사들의 통장 사본을 보여 주며 수강생을 유치합니다. 관공서 등에서 입금된 내역을 보여 주며 '진짜 전문 파파라치'라고 광고하는 것이지요.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전국에서 수강생이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학원비는 대개 20만~50만원대 선입니다. 이틀간 이론, 하루 실습 등 보통 3일간 교육을 하는 식이지요. 파파라치 관련 법령에 대한 교육과 함께 동영상 촬영, 편집까지 가르친다고 합니다. 파파라치 강사들이 제작한 교재가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데요. 관련 법령에 대한 일목요연한 분석과 포상금 내역, 신고 요령과 사진·동영상 촬영법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파파라치 학원 중엔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한 곳도 있지만 교육청에서 인가를 받지 않고 무허가 교습소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많습니다. 교습 인가를 받지 않고 파파라치 강의를 하거나 사진기 등 장비를 판매하고 학원비 영수증을 끊어 주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학원의 불법 영업이어서 '학파라치(학원 파파라치)'의 타깃이 됩니다. 수강료를 초과 징수하거나 교습 시간을 위반한 것을 신고할 때는 30만원, 무등록 파파라치 학원을 신고할 때는 50만원의 포상금이 주어집니다.
“쉽게 고수입 올린다” 파파라치 지망생 몰려
파파라치들이 버는 수입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포상금 액수가 매달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파라치 업계에서는 경력 3~4년 차의 베테랑은 월 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원을 차릴 수준의 '원장급' 파파라치는 연봉 1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쉽게 고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초보자가 파파라치에 도전하지만 실제 고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서울 마포구청에서 올해 지급된 쓰파라치(쓰레기 무단 투기) 포상금 수령자 중 1위는 4건을 신고해 30만5000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옷에 장착해 찍는 단추모양 몰래카메라까지
파파라치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면면은 화려합니다. 일부 파파라치는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망원렌즈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동영상 촬영의 경우 캠코더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흔히 '단추 몰카'라고 불리는 촬영장비가 인기입니다. 단추 모양으로 생긴 렌즈를 블라우스나 티셔츠에 장착하면 연결된 선을 통해 정면의 영상이 녹화되는 첨단 장비입니다.
첨단 장비를 사용하다 보니 파파라치에 입문하려는 사람들 중에서는 장비 구입 문제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일부 파파라치 인터넷 카페에서는 '장비 구매 권유에 속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입니다.
학파라치 시행 한 달만에 포상금 1억 지급
범법 억제 효과는 탁월합니다. 과태료 통지서를 받아 든 업주들은 '일할 맛 안 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몇십만~몇백만원에 달하는 과태료 때문이지요.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12일 학파라치제 시행 한 달 만에 신고 건수가 2000건, 포상금 지급액이 1억원을 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범법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파파라치를 정부가 양성한다는 비난 여론도 높습니다. 정부에서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카파라치제 부활을 검토하고 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쉽게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케이블방송 QTV의 프로그램 '비하인드'에서 '파파라치' 편을 제작한 박범렬 PD는 “취재 결과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파파라치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며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이후 쇠파라치(쇠고기 원산지 허위 표시 신고자)가 생겨나는 등 이슈에 따라 새로운 장르의 파파라치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파파라치 제도가 처음에는 시민들의 준법·신고정신을 제고하기 위해 시작됐으나 지금은 전문적인 밥벌이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는 시민이나 업체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파파라치(paparazzi)=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 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말한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든 '달콤한 생활'에 등장한 신문사 사진기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펠리니 감독이 남의 피를 빠는 모기(파파타치)와 아무 때나 번쩍 하는 번개(라치)를 합해 지은 말이라는 설도 있다. 파파라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다. 모나코 왕실이 미국 영화배우 출신인 그레이스 캘리 왕비의 딸인 캐롤라인 공주의 성장 과정을 촬영할 권리를 경매에 부쳤고, 이렇게 찍은 공주의 사진이 수억원을 호가하면서 몰래 공주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 취미 > 추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는 손목시계로 전화하는 시대인가.. (0) | 2009.11.27 |
---|---|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0) | 2009.11.16 |
이런 멀티탭 있으면 좋겠네요. (0) | 2009.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