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llica - HISTORY

2009. 4. 17. 16:58 from ▣ 취미/Artist

지난 20년간 가장 대중적이고 또 가장 영향력 있는 헤비 메탈 밴드'라는 [롤링 스톤]지의 평이 말해주듯, 메탈리카(Metallica)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폭넓은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메탈 밴드이다. 1980년대 중반, 반듯하거나 번드드르한 주류 메탈 밴드들이 상업적 성공을 구가하고 있을 때, 메탈리카는 이와 반대로 어둡고 더욱 강력한 사운드로 밑바닥부터 지지자를 끌어모아 정상에 등극했다. 비타협적인 방식을 견지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쓰래쉬 메탈의 선구적인 사운드를 개척한 독창성과 탄탄한 연주력작곡력, 그리고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샤우팅그로울링으로 자신감 있게 내뱉는 보컬, 거칠면서도 냉정하게 몰아치는 기타, 변박과 정박을 수시로 넘나들며 메탈 리듬의 정형성을 탈피한 베이스와 드럼, 이상의 요소들이 모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그들의 사운드는 헤비 사운드의 전형이자 모범을 세웠다. 그리고 당대에 혁신적이었다.

메탈리카는 1981년 LA에서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 멤버는 덴마크 출신의 드러머이자 리더인 라스 울리히(Lars Ulrich),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 리드 기타리스트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 베이시스트 론 맥고브니(Ron McGovney)였다. 이들은 1982년 컴필레이션 앨범 [Metal Massacre 1]에 'Hit the Lights'로 참여했고, 이 음반을 준비하면서 녹음하였던 곡과 이후 몇 곡 더 녹음한 곡을 모아서 데모 테이프 [No Life 'Til Leather]를 내놓았다. 데모 테이프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은 동시에 이들은 베이시스트를 클리프 버튼(Cliff Burton)으로 교체하면서 한층 탄탄해진 라인업을 구축하게 되었다. 클리프 버튼 영입 후 샌프란시스코로 근거지를 옮긴 이들은 인디 레이블 메가포스(Megaforce Records)와 계약하였고, 라이브 공연에 전력에 다했다. 1983년 초 미국 동부 지역에 투어를 돌던 메탈리카는 알콜에 찌들은 데이브 머스테인을 방출하고, 리드 기타리스트로 엑소더스(Exodus)의 멤버 커크 해밋(Kirk Hammet)을 영입했다.

1983년 봄 메탈리카는 데뷔 앨범 [Kill 'Em All]을 발매했다. 원래 타이틀이 'Metal Up Your Ass'였던 이 앨범에 나타난 메탈리카의 음악적 뿌리는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쉬 헤비 메탈(NWOBHM: 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과 하드코어 펑크였다. 특히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모터 헤드(Motorhead) 등의 영향은 메탈리카 사운드의 근간을 형성했다. 메탈의 양식미와 하드코어 펑크의 비타협적 직진성은 메탈리카를 통해 메탈의 혁신적 변이를 잉태했다. 이 새로운 사운드는 다음 앨범인 2집 [Ride the Lightning]에서 좀더 원숙하게 틀을 잡았다.

METALLICA - Seek and Destroy (Metal Hammer Festival 1985)

1집의 'Jump in the Fire', 'Seek & Destroy'라든지 2집의 'Fight Fire with Fire', 'For Whom the Bell Tolls', 'Creeping Death' 등은 쓰래쉬 메탈(Thrash Metal)의 진정한 출발점이자 모범적인 제시물들이었다. 메탈리카가 들려준 어둡고 분노 어린 샤우팅 보컬과 거칠고 둔중한 리프의 기타와 사정없이 몰아치는 드럼과 베이스는 헤비 사운드의 신봉자들로부터 점차 지지층을 늘려갔다. 이 '어둠의 자식들'의 숫자는 언더그라운드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터지기 직전에 팽팽하게 부푼 풍선과 같았다.

METALLICA  - For Whom The Bell Tolls (1986)

엘렉트라 레코드(Elektra Records)와 계약하고 발표한 3집(이자 메이저 데뷔작이라 할만한) [Master of Puppets]는 마침내 믿기지 않는 상업적 성공을 가져 왔다. 당대의 주류 음악들과 비교해봤을 때 도무지 대중성이라곤 없어 보이던 이들(의 앨범)이었기에, 3집이 앨범 차트 30위권에 오르고 플래티넘을 따내고, 앞선 1, 2집이 엘렉트라에서 재발매되어 플래티넘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듯 팔려나가는 일련의 현상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TV나 라디오 방송의 도움을 받지 않고 끊임없는 라이브와 음악 자체만을 가지고 거둔 성공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그해 9월 27일 유럽 투어 도중 밴드의 투어 버스 사고로 촉망받는 베이시스트였던 클리프 버튼이 요절한 비극은 오히려 이미 불붙기 시작한 메탈리카 인기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Metallica - Master Of Puppets (Seattle 1989)

총 5백만 장이 팔린 [Master of Puppets]는 쓰래쉬 메탈의 완성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앨범을 쓰래쉬 메탈의 명반이자 대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수록곡 수는 8곡으로 평범했지만, 한 곡 한 곡의 곡 길이는 모두 5분이 넘었고, 그 중 3곡은 8분이 넘는 곡들이었다. 메탈리카식 쓰래쉬 메탈은 더욱 안정되고 밀도 높아졌으며('Master of Puppets'를 들어보라), 전작에서 예외적으로 선보였던 메탈리카식 서정성은('Fade to Black') 기타의 지위를 위협하는 클리프 버튼의 베이스가 인상적인 연주곡 'Orion'과 타이틀 곡에서 한층 유연하게 구사되었다. 가사도 앨범이 거듭될수록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앨범에 이르러 사회적인 주제와 개인의 내면에 대한 통찰이 분노, 조롱, 선동, 자긍심 등의 형태를 띄며 사운드에 뒤지지 않는 발전을 이루어냈다.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의 안타까운 죽음로 인해, 이후 메탈리카는 플롯섬 앤 젯섬(Flotsam and Jetsam)의 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를 영입하여 커버(리메이크) EP [Garage Days Re-Revisited]를 레코딩하였는데, 이 EP 역시 매우 잘 팔려 나갔다.

Metallica - One

1988년, 메탈리카는 4집 [...And Justice For All]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전작들보다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며 더 서사적인 앨범이었다. 뜨겁게 토해낸다기보다는, 차갑고 냉정하게 빚은 앨범이었다. 메탈리카가 처음으로 만든 비디오 클립 'One'은 M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고(싱글 차트에도 40위권에 올랐다), 앨범은 총 7백만 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메탈리카의 인기는 더 올라갈 곳이 없어보였다.

Metallica - Enter Sandman

그러나, 정상이 남아 있었다. 1991년 발매된 앨범 [Metallica]는 마침내 크로스오버 히트, 대박 중의 대박을 기록했다. 대중적인 감각으로 유명한 록 프로듀서 밥 록(Bob Rock)이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지난 앨범까지 극한적 양식 실험과 진화를 펼쳐 더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이던 이들의 출구가 되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밥 록을 프로듀서로 기용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기계처럼 꽉 짜인 연주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발라드적인 색채도 일정 비율 섞었고, 제임스 헷필드는 몇몇 곡에서 생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이런 그의 창법은 메탈리카 팬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Enter Sandman', 'The Unforgiven', 'Nothing Else Matters'가 MTV와 라디오에서 자주 나왔고, 록 음악 취향이 아닌 사람들까지 메탈리카의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가 되었다. 이제 메탈리카는 단순히 쓰래쉬 메탈 밴드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 결과 이 앨범은 현재까지 총 1200만장이 팔린 다이아몬드 앨범이 되었다.

Metallica - Fuel

앨범 [Metallica] 이후, 메탈리카는 수 년 동안 투어를 다녔다. 그 사이 음반사에서는 [Live Shit: Binge and Purge]라는 박스 세트를 내놓았다. 그런데 메탈리카가 오랜 투어를 하던 기간에 대중음악계에는 얼터너티브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새로운 음반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는 이미 메탈은 흘러간 옛 음악이 되어 있었다. 얼터너티브의 시대에 공룡 쓰래쉬 메탈 밴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메탈리카는 시대의 대세를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발매되었지만 사실은 같은 시기에 녹음된 [Load](1996)와 [Reload](1997)는 그 결과물이었다. 메탈리카 멤버들은 치렁치렁하던 머리를 자르고 단정한 모습으로, 그리고 얼터너티브 음악 요소가 뒤섞인 사운드를 들고 나타났다. 메탈리카의 팬들은(그리고 메탈 팬들은) 경악했다. 변절했다는 비난과 혹평도 뒤따랐다. '변절'로 평가하는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메탈리카의 사운드가 예전에 비해 밀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Metallica - The call of ktulu(S&M)

1998년 말 메탈리카는 예전해 발표했던 비정규 앨범 수록곡들과 새로 녹음한 커버곡들을 묶어 2장의 CD [Garage Inc.]에 담았다. 1999년에는 버클리 커뮤니티 씨어터(Berkeley Community Theatre)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와 자신들의 곡을 협연했는데, 이 때의 실황을 담은 2장짜리 라이브 앨범 [S&M]이 그해 말에 발매되었다.

2000년 메탈리카는 자신들의 음악과 연주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냅스터(Napster) 논란/논쟁'이다. 냅스터 논란/논쟁이란, 각자가 갖고 있는 음악 파일을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냅스터를 통해 전세계 수천만명의 이용자들이 파일을 교환하게 되자 음반 산업계와 저작권 단체에서 냅스터를 저작권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지법에 고소하였고 이에 찬반양론이 거셌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메탈리카는 음반 산업계와 저작권 단체와 입장을 같이 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강하게 냅스터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비난했다. 나아가 냅스터에 압력을 넣어 자신들의 음악 파일을 갖고 있거나 교환하는 이용자들이 결국 냅스터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메탈리카는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만 4700만장 이상의 정규 앨범 판매고를 올린 재벌 밴드였기 때문이다.

출처 : 뮤즈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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